眞情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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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소기업인증원 작성일 25-09-17 17:42본문
회담장(...) 셋팅 모습입니다.
노상 담화 하기 좋은 여름이 가는 것을 무척 아쉬워하며
길거리에 셋팅 해 보았습니다.
항우와 유방이 회담한 '鴻門宴'을 떠올려 봅니다
담판은 항상 기와기, 이익과 이익, 목표와 목표가 격돌하여
평행선을 달리기 십상이라지만,
상대를 이겨야 내가 살 길이 열린다지만,
너와내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에는
진정성을 상생의 길을 열 모사로 삼고초려 해 봄이 어떨지^^
‘진정성’
사전적으로 진정성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한 가지는 진실하고 애틋한 마음을 뜻하는 진정眞情이고, 다른 하나는거짓이 없이 참되다는
의미의 진정眞正이다.
아마도 소비자가 원하는 진정성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 진정성일 것이다.
브랜드 진정성을 연구한 서상우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진정성의 의미에는 성실sincerity,
신뢰trust, 진품성genuineness, 적법성legitimacy, 신용credibility, 독창성originality,
혈통pedigree, 전통heritage, 유일성uniqueness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상에서 열거된 가치는 진정성과 동의어로 통용되기도 하고,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 갖추
어야 할 조건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위 연구에 따르면 진품성은 대표적으로 ‘평판과 일치하는 명백한 품질 또는 성격을 실제로
가진 것’, ‘실제로 알려진 출처나 작가에 의해 생산되거나 유래한 것’,‘참되게 느껴지
거나 경험된 것’을 가리킨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자면, 진정성이란 개념적으로 대상에 대한 정보와 대상의 실제 속성이
일치하며,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될 만한 정당성이 있고, 이 모든 것이 의심의 여지없이
사실일 때 얻어지는 가치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12>에서
출처 http://cafe.naver.com/durannoch
홍문의 연회
[ 鴻門宴 ]거록대전에서 진나라 대장 왕리를 죽이고 장한을 항복시킨 항우는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함곡관(函谷關)으로 진군했다. 그런데 함곡관에 이미 와 있던 유방의 군대들이 항우 군대의 입관을 저지했다. 대노한 항우는 군사를 명해 함곡관을 맹공격하게 했다. 함곡관을 쉽사리 함락한 항우의 군대는 그 승세를 타서 신풍(新豊), 홍문(鴻門)까지 진군해 그곳에다 진을 쳤다. 거기서 유방의 군대가 있는 패상까지는 불과 40리였고, 항우는 이튿날 총공격을 실시하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항우의 숙부 항백(項伯)은 유방의 모사 장량과 친구지간이었다. 항백은 친구 장량의 목숨이 위태로울까 봐 야밤을 틈타 유방의 진영으로 가서 장량에게 빨리 피신하라고 알려주었다. 장량이 그 말을 전하자 유방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러자 장량이 말했다. “항백을 불러 도와 달라고 해야지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더러 항우에게 사정해 우리를 용서하게 해야지요.”
이에 유방은 급히 주안상을 차리고 항백을 불러 극진히 대접하면서 자기 딸과 항백의 아들을 혼인시켜 사돈을 맺자고 했다. 항백은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항우를 찾아와 좋은 말로 사죄를 하시오. 그러면 내가 곁에서 도와드리리다.”
이튿날 아침, 유방은 장량과 번쾌(樊噲), 군사 1백 명을 데리고 항우를 만나러 홍문으로 갔다. 항우를 보자 유방은 무척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저와 장군은 함께 진나라를 치기로 하고 함양으로 진군했는데 장군은 북쪽으로 진군하고 저는 남쪽으로 진군하였지요.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제가 먼저 관중으로 들어와 함양을 함락하게 되었고, 오늘 이렇게 장군을 뵙게 되었으니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어떤 소인배들이 장군과 저 사이를 이간시키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그자들의 말을 듣지 마시길 바라옵니다.”
성미가 곧은 항우는 유방의 가련한 상을 보자 노기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항우는 즉시 연회를 차리게 하고 잔을 들어 유방에게 권했다. 항우의 태도는 점차 화애롭게 변해 갔다. 연회석에서 항우의 모사 범증이 항우에게 눈짓을 하며 옥 술잔을 자꾸 가슴 앞으로 들어 보였다. 어서 유방을 죽여버리라는 재촉이었다. 그러나 항우는 본체만체하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범증은 구실을 대어 밖으로 나와서는 항우의 사촌형인 항장을 찾아서 당부했다. “항왕(항우)은 마음이 너무 무던해서 안 되겠네. 임자가 술상 앞으로 가서 유방한테 술을 권하고 흥을 돕는다고 칼춤을 추다가 기회를 봐서 한칼에 베어버리게.”
그런데 항장이 칼춤을 추는 것을 본 항백이 자칫하다가는 자신과 사돈을 맺은 유방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아서 “칼춤이란 둘이 추어야 멋이지 혼자 추는 법이 어디 있나.” 하며 칼을 뽑아들고 나가 칼춤을 추면서 유방을 보호했다. 일이 그렇게 되니 항장은 손을 쓸래야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사태가 위태로워지자 유방의 모사 장량은 기회를 엿봐 밖으로 빠져 나와서 번쾌를 불렀다. “큰일났소. 지금 연회석에서 항장이 칼춤을 추고 있소. 칼끝이 패공을 겨누곤 하는데 자칫하면 큰일이 나겠소.”
“뭐요! 그자들이 그런 짓을 하고 있단 말이오? 내가 들어가 보리다.” 보검과 방패를 들고 달려간 번쾌는 앞을 가로막는 문지기들을 밀쳐버리고 노기 충천해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에 노기를 띤 시커먼 사람 하나가 느닷없이 연회석으로 뛰어들자 항우는 급히 검을 쥐며 외쳤다. “이놈, 넌 누구냐?”
장량이 급히 나서며 말했다. “패공의 차부인 번쾌입니다. 시간이 지체되어 배가 고파 그러는 것 같사옵니다.”
항우는 번쾌의 웅장한 모습을 보고 찬탄해 말했다. “과연 대단한 장사로군. 그에게 술 한 되와 돼지 다리 하나를 상으로 내줘라.” 술 한 되를 단숨에 들이키는 번쾌를 지켜보고 있던 항우는 그 호걸스러운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어 물었다. “술을 더 마시겠는가?”
번쾌는 거친 음성으로 대답했다.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술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더 주면 더 먹겠습니다. 애당초 회왕께서 뭐라고 약조를 하셨습니까? 먼저 함양을 점령하는 사람을 그곳의 왕으로 세운다고 하였지요? 그러다 패공께서 먼저 함양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패공은 창고들을 봉해놓고 군대는 함양에서 나와 패상에 주둔시키고 대왕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공이 많은 패공께 상을 내리지는 못할망정 이간을 일삼는 소인배들의 말을 듣고 패공을 죽이려고 하시다니,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진나라 왕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답변이 궁색해진 항우는 그를 불러 장량 곁에다 앉혔다. 그 사이에 정신을 차린 유방은 볼일을 본다며 그 자리를 빠져 나갔으며, 장량과 번쾌도 따라나갔다. 유방은 그 기회에 자신의 군영으로 몰래 돌아가고 싶었지만 작별인사도 없이 간다는 것이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것 같아 망설였다. 그것을 본 번쾌가 발을 동동 굴렀다. “천하를 도모하는 사람이 그 잘난 예의에 발목이 잡힌단 말입니까! 지금 우리는 도마 위에 오른 고기가 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세인데 예의가 다 무엇입니까! 지금 그런 것을 따질 경황입니까! 어서 가십시다. 안 가시면 큰일이 납니다.”
유방이 빠져 나간 후 장량은 한참 동안 있다가, 유방이 군영에 도착했을 때쯤에 항우의 군막 안으로 들어가 사과를 했다.
“패공은 원래 주량이 적은데다 오늘 과음을 해서 미처 대왕님께 작별인사도 못 드리고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패공께서 대왕님께 드리는 한 쌍의 백벽(白璧)이고, 이것은 아부(亞父, 항우는 범증을 ‘아부’라고 불렀다)께 드리는 옥 술잔이옵니다.”
백벽을 받은 항우는 아무 말이 없는데 범증은 성이 나서 옥 술잔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보검을 내리쳐서 산산조각을 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정말 큰일을 못할 사람이야. 저런 사람을 도와주는 내가 부질없지. 항왕의 천하를 앗을 자는 저 유방뿐이거늘. 우리는 장차 유방의 포로 신세를 면치 못할 거다.”
홍문의 연회는 이렇게 초한(楚漢) 전쟁의 서막을 열어놓았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홍문연’은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벌이는 연회석’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항장이 칼춤을 추는 의도는 패공을 해치려는 데 있다’는 뜻인 ‘항장검무의재패공(項莊劍舞意在沛公)’이라는 성구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 출처 중국상하오천년사, 풍국초, 2008.4.25, 신원문화사
[네이버 지식백과] 홍문의 연회 [鴻門宴] (중국상하오천년사, 2008.4.25, 신원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