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마당

 
작성일 : 21-07-15 09:00
쾌락적응과 최악의 상황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7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세상에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종종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여 깊이 숙고한다. 그리고 스스로 대비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생각을 회피한다. 행운에 기대, 최선의 상황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막연히 믿는다. 지혜로운 사람이 이런 생각수련을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불행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막거나 일어나도 그 파급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것은, 누군가는 도둑이 자신의 집에 들어올 것을 예상하여 CCTV를 설치하거나 자신이 예상치 못한 병에 걸릴 수 있다고 가정하여, 건강보험을 드는 것과 같다.

우리가 나쁜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그런 일들은 인생이 한두 번, 혹은 그 이상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로마제국의 철학자, 정치가, 그리고 극작가였던 세네카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 실제로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경우, 그 충격을 상당히 경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는 순진하고 긍정적인 사고에 안주한다면, 불행은 더 많은 고통을 유발시키기 마련이다.

세네카는 인생을 마감하며 쓴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도덕편지' 7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 당신은 이런 무시무시한 공포로 나를 위협합니다. 그러나 나는 항상 그런 것들로 제 자신을 위협해 왔습니다. 저는 언제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으로 제 자신을 준비시켜왔습니다. 만일 내가 악(불행)을 미리 숙고하고 준비했다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경우, 내 충격은 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행운을 신봉합니다. 그들에게 인생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갑작스럽고 상상할 수 없고 신기합니다.……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그런 최악의 상황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깊은 숙고를 통해 경감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것을 실제 경험으로 처절하게 견딥니다."

우리가 최악의 상황을 마음으로 준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 인간의 삶은 기본적으로 불행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욕망은 한이 없어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심히 수년 동안 정성을 쏟아 획득한 물건이나 사람은, '세월'이라는 괴물에 굴복하여, 나의 욕망의 대상에서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기보다는, 지겨움으로 전락한다. 우리는 그 대상보다 욕망을 더 자극하는 새롭고 화려한 것을 찾기 시작한다. 심리학자들은 그런 심리를 '쾌락적응'이라고 부른다.

쾌락적응의 대표적인 예가 광고에서 본 화려한 물건사기다. 아무리 멋진 자동차나 명품가방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시시해진다. 더 좋은 자동차와 가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쾌락적응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꿈에 그리던 상대를 만나 관계를 맺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의 장점이 아니라 약점에 대해 '깊이 숙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쾌락적응을 통해, 만족이 불가능한 쳇바퀴 속에서 스스로를 소진한다. 인간은 실현이 불가능한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불행하다. 우리는 한 가지 욕망을 실현시켰을 때,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 욕망이 실현되었을 때, 욕망은 진부한 일상이 된다.

스토아철학자에겐 특별한 사고 훈련이 있다. 라틴어로 '프라이메티치오 말로룸'(præmeditatio malorum), 즉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생각하기'다. 흔히 '부정적 시각화'라고 번역되는 용어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는 '명상록' 11권 34단락에서 철학자 에픽테투스를 인용하면서 이 훈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에픽테토스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아이에게 입 맞출 때, 당신은 마음속에 이렇게 중얼거리십시오. '내일 너는 죽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불길한 말이 아닙니다! 그(에픽테로스)는 말합니다. 자연의 섭리 가운데 있는 것은 불길하지 않다. 불길하다면, 추수된 옥수수에 대해 말하는 것도 불길할 것이다."

한 아버지가 에픽테토스의 조언에 따라, 아이의 죽음에 대해 종종 상상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아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기뻐할 것이다. 그의 조언은 가족뿐만이 아니라, 친척, 친구, 더 나아가 직장 동료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고 감사한다. 만나는 순간을 영원으로 전환시키려 노력한다.

코로나감염의 4차 대유행으로 수도권은 오늘부터 2주간 거리두기 최고 단계인 4단계에 진입하였다.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해 네 번의 변화를 시도하여 '델타 변이'로 진화하였다. 이 변이는 우리에게 독감과 유사한 기침, 콧물, 인후염과 같은 증상으로 공격하여, 전파속도를 증가시켰다. '델타'(δ)라는 그리스 단어는 '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달렛'(daleth)에서 파생된 단어다. 우리는 한 번도 진입한 적이 없는 문을 통과할 참에 있다. 우리가 앞으로 2주 동안 가족과 함께 '부정적 시각화'를 연습해 보면 어떨까? 이 기간은 사랑하는 이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고, 그들의 존재를 감사하고 기뻐하는 부정적 시각화를 위한 최적의 수련기간이다.

[출처]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