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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6-2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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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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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콜럼버스와 딥마인드

​1492년 8월 3일 대부분 죄수로 구성된 120명의 선원과 세척의 배로 스페인을 출발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선상 반란을 잠재우며 두달간의 항해 끝에 10월 12일 지금의 바하마 군도에 도착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였다. 물론 아메리카 대륙에는 후에 인디언 또는 인디오로 불릴 원주민이 이미 살고 있었기 때문에 발견이란 표현은 어디까지나 유럽인의 관점일 뿐이지만 콜럼버스의 항해가 세계 역사에 미친 영향을 보면 신대륙의 발견이란 표현에 부족함이 없다.



콜럼버스의 이 역사적인 항해는 그러나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 1세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당시 국토수복전쟁을 막 끝내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던 스페인으로서는 성공이 불확실한 콜럼버스의 탐험을 위해 현재 가치로 10억 원에 달하는 항해 비용을 지원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스페인 국내 학자들과 대신들 역시 콜럼버스를 사기꾼으로 몰며 반대했다.



하지만 이사벨 1세의 계산은 달랐다. 당시 이웃 국가인 포르투갈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이르는 항해 루트를 개발하고 서아프리카 지역을 탐사 개발하는 등 국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르네상스를 맞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 역시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국력이 소진된 스페인으로서는 비록 성공 가능성이 낮다 하더라도 콜럼버스의 항해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데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사벨 1세의 판단은 옳았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으로 세계는 대항해시대를 맞게 되었고 스페인은 16세기 말까지 브라질을 제외한 전 라틴아메리카를 점령하게 되었다. 정작 콜럼버스는 이사벨 1세에게 약속했던 엄청난 금광을 찾는데 실패했지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자극받은 다른 탐험가들은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매년 1톤 이상의 금과 200톤 이상의 은을 유럽으로 들여오게 되었고 식민지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은 스페인은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콜럼버스의 항해가 있은지 530년이 지난 오늘 새로운 금광을 꿈꾸는 수많은 젊은이들과 기업들이 인공지능이라는 신대륙을 찾아 대항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항해가 그랬듯이 인공지능 연구에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알파고로 유명한 딥마인드가 얼마 전 발표한 재무제표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2019년 딥마인드는 4천억 원 매출에 7천억 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2014년 구글이 딥마인드를 인수한 이래 계속되고 있는 손실이다. 지금까지 딥마인드의 모회사인 알파벳이 딥마인드에 투자한 돈이 2조 원을 넘는다고 한다. 이러한 손실의 주된 이유는 인공지능 기술자들의 높은 인건비인데 딥마인드에는 1000여 명의 인공지능 인력이 있고 이들의 평균 연봉이 6억 원을 넘는다고 하니 제대로 인공지능 연구를 하려면 매년 수천억 원의 인건비 지출을 감내할 각오를 해야 한다.



남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를 지원한 이사벨 1세와 마찬가지로 알파벳의 CEO로서 매년 수천억 원씩 적자를 보고 있는 자회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결정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학고한 비전과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을 제압한 이래 우리 주변에서 인공지능은 매우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인공지능 밥솥에서 인공지능 청소기까지 광고만 보면 우리가 이미 인공지능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하지만 과연 밥솥과 청소기를 보면서 그 기계들이 정말로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인공지능은 마케팅과 광고에서 사용할 유행어가 아니다. 제대로 된 인력과 비용과 시간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연구 개발이다. 황금이 넘치는 인공지능 신대륙을 발견하려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콜럼버스와 같은 탐험가뿐 아니라 비전을 가지고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이사벨 1세나 순다르 피차이와 같은 리더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